[데스크 칼럼] 용산정비창 차라리 그냥 놔둬라

입력 2020-05-27 18:13   수정 2020-05-28 08:56

“용의 머리가 뱀 꼬리가 되게 생겼습니다.”

국토교통부의 용산(龍山)정비창 개발 계획 발표 후 드림허브 임원을 만났다. 이 회사는 10년 전 용산정비창 개발을 주도했다. 도전은 실패로 끝났지만 용산정비창의 바람직한 개발 방향에 대해 국내에서 가장 많이 고민한 사람이란 생각에서였다.

그의 반응은 실망 그 자체였다. 그는 “용산정비창을 잘 개발하면 서울을 상하이 홍콩 싱가포르 등을 뛰어넘는 국제도시, 금융중심지로 변모시킬 수 있다. 이런 땅을 임대아파트로 사용하겠다는 발상이 놀랍다”며 흥분했다.

국토부가 용산정비창에 아파트 8000가구를 짓겠다고 발표하자 우려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린다. 10년 전에도 용산국제업무지구에 아파트를 일부(5000가구) 지을 계획은 있었지만 규모가 달라서다. 당시엔 용산정비창(약 44만㎡)과 서부이촌동(약 12만㎡)을 모두 합한 땅에 5000가구를 들일 계획이었다. 지금은 용산정비창 부지에만 8000가구를 지을 계획이다.

금싸라기 땅에 임대아파트라니

과거엔 외국인 원주민 등을 위한 최고급 주택을 지을 예정이었다. 지금은 임대주택도 대거 들일 계획이다. 111층 랜드마크 빌딩, 88층 부티크 오피스텔, 최고급 호텔 등 23개 건물을 지어 용산을 국제도시로 만든다는 과거 구상에서 완전히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용산의 잠재력은 일반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입지부터가 그렇다. 서울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고, 사통팔달 교통망도 갖추고 있다. 한강과도 연계할 수 있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통해 서부이촌동의 병풍 아파트를 헐어버리면 서울은 말 그대로 항구도시다. 배를 타고 인천 앞바다로 가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다. 규모도 충분하다. 재개발을 통해 도시와 국가 경쟁력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미국 맨해튼 허드슨야드(11만㎡)와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복합리조트(15만㎡) 규모를 크게 웃돈다.

마침 시기도 좋다. 코로나19 위기에 모범적으로 대응하면서 한국의 위상은 한 단계 높아졌다. K팝, K뷰티에 이은 쾌거다. 아시아 최대 금융허브였던 홍콩이 미·중 간 패권 갈등 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곳에 영어가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도시, 국제학교 등 교육시설이 잘 갖춰진 도시, 첨단 기능을 갖춘 스마트 시티를 조성한다면 아시아 금융허브가 될 가능성이 있다. 참고할 만한 성공 사례도 이미 여럿 있다. 싱가포르가 대표적이다. 마리나베이와 센토사섬을 성공적으로 개발해 2만달러대이던 1인당 국민소득을 6만달러대로 끌어올렸다.

미래 먹거리 훼손하지 말길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고집스럽게 서울 아파트 공급이 충분하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10여 차례에 걸친 수요 억제 정책이 듣지 않자 마지못해 3기 신도시 등 수도권 30만 가구 공급 대책을 내놨다. 신도시로는 서울 수요를 만족시키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일자 이젠 용산정비창을 들고나왔다. 하지만 정작 도심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는 건드리지 않고 있다. 시장 수요와는 거리가 먼 뚱딴지같은 대책만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가 집값을 자극할까 봐 걱정하는 듯하다. 강남 사람들 좋은 일 시키기 싫다는 분위기도 읽힌다. 그러나 지금 같은 헛발질로는 문제만 키울 뿐이다. 제발 시장 목소리 좀 들으면서 대국적인 정책을 펼쳤으면 좋겠다. 그리고 후손들 먹거리인 용산정비창은 차라리 그냥 놔두시라.

trut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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